AI가 만든 지브리 스타일, 창작인가 침해인가

요즘 SNS를 뜨겁게 달구는 콘텐츠가 있다. 바로 ‘우리 가족이 지브리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려진 사진’. AI 이미지 생성기에 커플사진, 반려동물 사진, 혹은 아이의 모습을 넣으면, 금세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그린 듯한 따뜻한 이미지가 완성된다. 많은 이들이 감탄을 쏟아낸다. “진짜 지브리 같아!”, “액자로 걸어놔야겠어!” 그러나 이 감탄 속엔 묘한 불편함도 공존한다. 이 감동은 누구의 것인가?

AI는 수많은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해 특정 작가의 스타일을 ‘재현’한다. 이 과정에서 지브리 스튜디오의 그림체처럼 창작자의 고유한 감성이 데이터화되고, 그것이 마치 새 창작인 것처럼 유통된다. 저작권법상 구체적인 이미지나 캐릭터는 보호 대상이지만, ‘스타일’ 자체는 법적으로 명확히 보호되지 않는다. 이 회색지대 속에서 AI는 끊임없이 모방하고, 이용자는 손쉽게 그것을 소비한다.

왼쪽은 사진의 원본, 오른쪽은 AI가 그려낸 이미지(이미지=Eddy&Vortex)

그러나 지브리 스타일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수많은 현장답사와 수작업 스케치를 거쳐, 자연의 움직임과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 그는 “우리는 움직이는 그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가진 생명을 그리고 있다”고 말해왔다. 캐릭터의 움직임, 하늘빛의 변화, 나뭇잎의 떨림 하나까지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것이다.

AI가 예술 영역에 진입하면서 생길 수 있는 윤리적 충돌은 이미 예전부터 창작자들이 우려해온 부분이었다. 미야자키 감독은 2016년 다큐멘터리에서 AI 애니메이션을 접한 뒤, “전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 “이건 생명에 대한 모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AI가 그려낸 그림에서 ‘감정’이 빠져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이러한 비판은 지금의 AI 지브리 붐과 맞물리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팬들이 지브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린 팬아트가 있었다. 팬아트는 팬의 해석과 존중이 깃든 ‘참여형 창작’이었다. 하지만 AI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창작자에 대한 존경도, 세계관에 대한 이해도 없이 스타일만을 재현한다. 그 결과는 익숙하지만 생명이 없다. 영혼 없는 그림자가 창작자의 자리를 잠식하는 셈이다.

지브리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유사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2022년, 미국 콜로라도 주 박람회에서 AI 생성 이미지가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 우승하며 “이것이 예술인가?”라는 논쟁을 촉발했다. 2023년에는 시각 예술가들이 Stability AI, Midjourney 등 AI 이미지 플랫폼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의 그림이 무단으로 학습에 사용되었다는 주장과 함께,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AI 기술은 분명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창작자의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그것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윤리의 퇴보다. 우리는 지금, 기술이 만든 감탄의 이미지들 속에서 창작자와 모방의 경계선을 다시 그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우리는 묻는다. AI가 만들어낸 지브리 스타일의 그림이 당신의 마음을 움직였을 때, 그 감동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 감동이 정당했는가? 창작과 침해의 경계에서, 이제는 우리 모두가 고민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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