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호출기 폭발 사건
지난 2024년 9월 17일, 레바논 전역에서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무선 호출기 수백 대가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음 날인 9월 18일에는 무전기에서도 유사한 폭발이 보고되었다. 헤즈볼라가 내부 감청을 우려해 스마트폰 대신 무선 호출기와 무전기를 활용한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었으나, 이번 폭발 사건을 통해 그러한 대체 수단마저도 이스라엘의 공작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폭발한 호출기 중 상당수가 대만 업체 ‘골드 아폴로’의 제품으로 확인되었으나, 해당 업체는 헝가리 ‘BAC 컨설팅 KFT’가 상표 사용권을 받아 제조한 제품이라며 책임을 부인했다. 그러나 헝가리 정부는 BAC가 자국 내 제조 시설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한편, 폭발된 무전기에는 ‘ICOM’이라는 라벨이 부착되어 있었으나, 일본의 ICOM사는 해당 기기가 자사 제품이 아니라 복제품이라고 주장했다.
군사 정보전과 이스라엘의 개입 가능성
이번 사건은 단순한 통신 장비의 결함이 아닌, 군사적 정보전 및 공급망 보안의 취약성을 노출한 사례로 평가된다. 서방 언론은 이스라엘 정보전 부대 8200부대가 이 작전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8200부대는 과거에도 적대 세력의 통신망을 교란하는 전략을 펼친 바 있으며, 이번 사건에서도 헤즈볼라의 통신망을 무력화하기 위한 정보전의 일환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뉴욕타임즈와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하여 헤즈볼라가 구매한 5,000여 대의 호출기에 PETN 폭발물을 심어두었으며, 이를 원격 조종해 폭발시켰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는 단순한 감청을 넘어, 적의 군사 장비를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정보전이라 평가된다.
공급망 보안의 취약성과 위협
이와 같은 공격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공급망 보안의 취약성이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전자기기 공급망이 복잡해지면서, 생산 및 유통 과정에서 악의적인 개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특정 국가나 단체가 목표로 하는 장비에 대해 제조 과정에서 직접 폭발물을 장착하거나 원격 조작 가능한 시스템을 심어둘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는 기존의 사이버 보안 개념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단순한 해킹을 방어하는 수준을 넘어, 하드웨어 보안과 공급망 전반에 대한 감시 및 검증이 필수적인 시대가 도래했다.

국제사회의 대응과 공급망 보안 강화
국제 사회는 이러한 공급망 보안의 위협을 인지하고 점점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 초 중국산 애플리케이션과 CCTV 장비에서 감시 및 해킹 기능이 발견된 사례를 근거로 특정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유럽 연합 역시 자국 내 주요 인프라에 대한 공급망 보안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또한 ‘SW 공급망 보안 로드맵’을 통해,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외국산 제품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보안 강화가 아니라, 국제적 공급망 통제 전략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향후 전망과 과제
앞으로 꾸준히 기술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보전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은 IT 보안의 범위를 넘어서 하드웨어 기반의 공격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이며, 공급망 보안이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임을 다시금 각인시켰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와 관련 기관들은 공급망 보안 강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군사·정보기관 역시 공급망을 무기화하는 전략을 적극 검토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의 국제 질서는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기술과 정보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전장으로 더욱 변화해 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