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모회사와 자회사가 각각 상장되는 일명 ‘중복상장’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중복상장은 자회사가 별도로 상장되면서 투자자 간 이해 충돌과 기업 가치 왜곡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이러한 문제는 국내 기업 구조의 특징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반면, 해외 사례를 보면 애플, 알파벳 등 주요 기업들은 모회사가 상장된 경우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직적 통합 모델과 단일 상장
애플은 세계 최대 IT 기업 중 하나로, iPhone, iPad, Mac 같은 하드웨어부터 App Store, iCloud 같은 서비스까지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애플의 자회사들, 예를 들어 Apple Operations International이나 Beats Electronics 등은 별도로 상장되지 않았다.
애플은 이러한 구조를 통해 모든 사업 부문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으며, 자회사가 상장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이해 충돌을 방지하고 있다.
만약 Beats Electronics가 독립적으로 상장되었다면, 이 회사의 수익성과 전략이 애플 전체의 방향성과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자회사가 상장되지 않은 현재의 구조는 애플이 그룹 내 긴밀한 수직적 통합 모델을 유지하면서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단일 상장을 통해 투자자들은 기업 전체의 성과를 통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자회사의 개별 실적보다는 애플이라는 단일 회사의 전체 가치를 중심으로 평가되므로, 시장의 혼란을 줄이고 주주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자회사를 품은 지주회사 모델
구글은 2015년 지주회사 알파벳을 설립하며 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알파벳은 구글을 포함해 웨이모(Waymo), 베릴리(Verily)와 같은 다양한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지만, 이들 자회사는 독립적으로 상장되지 않는다.
알파벳이 이 모델을 선택한 이유는 모회사만 상장해도 자회사의 가치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으며, 자회사의 상장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기업 가치 왜곡이나 투자자 혼란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하는 웨이모가 별도로 상장되었다면 초기 연구 단계에서 발생하는 높은 비용 구조로 인해 시장에 부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알파벳은 웨이모의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기반으로 모회사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중복 상장의 부재
애플과 알파벳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해외 주요 기업들이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는 전략은 여러 가지 장점을 제공한다.
첫째,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음으로써 기업의 전체 가치를 투명하게 평가할 수 있다. 단일 상장을 통해 투자자들은 복잡한 구조를 이해할 필요 없이 모회사 단위에서 통합된 기업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이는 기업 구조를 단순화해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둘째, 전략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자회사가 상장되면 각 자회사의 주주들이 독립적인 이해관계를 갖게 되므로, 기업 전체의 전략적 방향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자회사가 상장되지 않으면 모회사 중심의 전략이 일관되게 유지될 수 있다.
셋째, 기업은 장기적 성장 가능성을 강조할 수 있다. 단일 상장은 투자자들에게 단기적 성과보다는 기업의 장기적 비전과 가능성을 평가하도록 유도하며, 단기적 압박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넷째, 상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별도 상장은 초기 상장 비용은 물론 이후에도 규제 준수와 보고 의무 등에서 지속적인 비용을 발생시킨다.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비용을 절감하고, 이를 핵심 사업에 재투자할 수 있다.

왜 국내와 해외는 다를까
국내 기업들이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시키는 이유는 주로 자본 조달에 있다. 대규모 자본 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 모회사만으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애플과 알파벳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은 이미 막대한 자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내부 자원 활용과 대규모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자본을 조달한다.
국내 기업들은 복잡한 지배구조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회사 상장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으며, 모회사와 자회사 간의 가치 왜곡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해외 기업들이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는 이유는 법적 규제 때문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자회사 상장 여부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제한이 없으며, 이는 기업의 경영 전략과 자본 구조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된다.
애플과 알파벳은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는 것이 장기적인 기업 가치 유지와 전략적 일관성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이러한 선택은 법적 의무가 아니라 경영적 판단에 기반한 것이다.

해외 주요 기업들이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자본 조달 문제가 아니라, 기업 가치의 통합적 관리와 장기적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전략적 선택에 있다. 애플과 알파벳 사례는 자회사 상장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사전에 방지하며, 투자자들에게 더 신뢰성 높은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 모델을 보여준다.
국내 기업들 또한 이러한 글로벌 사례를 참고해 중복 상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더 투명하고 신뢰받는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 [시리즈] ①중복상장, 기업가치를 위협하는 양날의 검
- [시리즈] ②글로벌 기업의 선택, ‘중복상장’과 ‘단일 상장’